아주 긴~ 엘비스 코스텔로 내한공연 후기


엘비스 코스텔로의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첫번째 내한공연 다녀왔습니다. 어땠냐고요? 좋아했던 곡들 전부 들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솔직히 한국에서 그를 볼 수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던 터라 얼떨떨하기도 했어요. 한 외국인이 나오면서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It was pretty awesome!" 저도 동감합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왔죠. 풀 밴드 셋이 아니라 오직 어쿠스틱 기타로만 꾸민다길래 처음엔 많이 아쉽기도 했는데 비오는 날 센티한 기분에라면 이것도 딱히 나쁘지 않겠다 싶었어요. 공연을 기다리며 세종로 맛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때마침 TV에서 '세시봉' 특집을 하더군요. 당일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1) 'She' 말고는 국내 히트곡들이 없고 2) 비도 오고 3) 그나마 밴드 셋도 아니었기 때문에 관중석이 썰렁하면 어쩌나 우려를 했는데 1층과 2층이 꽉 찼습니다. 3층에 빈자리가 많긴 했지만 이 정도면 선방이죠. 다른 내한공연에 비해 외국인들이 적었는데 아마도 한국엔 영국인들보다는 미국인들이 더 많이 살아서 아닐까 추측도 해봤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3층도 소리가 잘 들립니다. 요즘 하도 내한공연들이 많아서 카드값이 쪼들려가지고 가장 싼 좌석을 예매했는데 역시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작 10분 전에 "드디어 보는구나.."를 연신 속으로 되뇌이면서 텅 빈 무대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엘비스 코스텔로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해외 자료들을 막 뒤지던 대학 1, 2학년 때가 떠오르더군요. 한 평론가에게 해설을 부탁하는 글을 올렸는데 올뮤직 바이오를 링크해주었던 씁쓸한 기억도 났습니다 ^^

사실 이렇게 긴 글을 올리는 이유도 예전에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인지라 엘비스 코스텔로의 음악 세계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겠네요. 공연 관람기만 원하시는 분은 점선 표시까지 살짝 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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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버디 홀리를 담은 뿔테 안경에 깡마른 기타 쟁이의 모습을 하고 <My Aim Is True>를 내놓았죠. 이 앨범 재킷은 이후 비틀즈의 더벅머리만큼이나 평생을 따라다니는 그의 대표 이미지가 됩니다. 한창 푸들머리가 유행할 '하드 록' 전성시대에 버디 홀리의 재림이라니, 기교나 허세에 쩔어 있던 공룡 록 밴드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한 록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이었겠죠?

첫 앨범 5장을 프로듀싱한 '닉 로우(Nick Lowe)'라는 이름은 꼭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전성기 음악의 핵심적 산파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Stiff> 레코드의 중심인물로서 1970년대 후반 영국의 펍 록과 펑크의 개화에도 큰 영향을 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씬에 대한 얘기를 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짧게만 설명할게요. 미국 쪽에서 뉴 웨이브(새로운 흐름)를 촉발시킨 언더그라운드 신생 음악이 CBGB였다면 영국 쪽에서는 펍 록이었습니다. 둘 다 기교 쩌는 하드 록 방식의 록을 배제하고 초기의 로큰롤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공통적인데, 그렇게 '기본'에 충실하게 빡쎈 반항을 벌여보자는 게 바로 펑크 밴드의 모토이기도 했죠. 엘비스 코스텔로의 음악을 듣고서 "평크의 기수라더만 아닌데?"라고 의문이 드셨다면 아직 펑크의 개화와 로큰롤 복고의 관계를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펑크이기 이전에 로큰롤이고, 로큰롤로서 펑크 붐에 가담했죠.

처음엔 솔로로 시작했지만 2집부터 '어트랙션스(Attractions)'라는 밴드를 만들어 좀 더 펑크적이고 강한 로큰롤을 들려줍니다. 어트랙션스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으로 치면 이 스트릿 밴드(E Street Band)만큼이나 중요한데, 일단 '어트랙션스'란 이름만 들어가면 펑크적인 로큰롤을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면서 이후 디스코그래피들에 여러 번 등장하죠.

닉 로우가 있던 밴드 브린슬리 슈와르츠의 명곡를 커버한 '(What's so funny about) peace love and understanding', 화끈한 키보드 리프가 유명한 'Pump it up', 도입부의 경쾌한 건반 연주로 유명한 'Aliver's army'가 모두 이때 나왔습니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팬이라면 아마도 이 시절 음악들을 제일 좋아할 거에요. 저도 마찬가지.

어트랙션스의 불화가 시작될 무렵부터는 장르의 폭이 대단히 넓어집니다. 위키피디어의 엘비스 코스텔로 소개에 보면 스테판 토마스 얼와인의 "팝 백과사전"이란 언급이 인용되어 있죠. 이때부터를 말하는 겁니다. 당시의 음악계는 신스 팝이나 뉴 로맨틱스 계열, 그러니까 '전자음악'이 유행할 때인데, 엘비스 코스텔로는 반대로 '뿌리'들을 파고들었습니다. 현대 대중음악의 기초들이자 소금과 후추라고 할만큼 중요한 장르들인 소울(<Get Happy!>), 재즈('Shipbuilding'), 컨트리(<Almost Blue>), 나중엔 클래식(<The Juliet Letters>)도 했죠. 이 당시 중요한 음악 파트너는 티 본 버넷(T-Bone Burnette)인데 컨트리 음악의 거장이자 2009년 그래미의 주인공인 로버트 플랜트와 알리슨 크라우스의 합작 <Raising Sand>도 이 사람 손에서 나왔습니다.

뮤직비디오의 시대에서 한발짝 벗어나긴 했지만 화장하고 패션화보 만드는 것만 거부했지 '영상'으로 한 방 날린 예도 있습니다. 80년대 최대 히트곡이라고 할 만한 'Everyday I write the book'엔 영국 왕자와 왕비를 꼭 빼닮은 커플이 우스꽝스러운 구애를 주고 받고 있죠. 노래가 수록된 <Punch The Clock>엔 대처리즘을 공격하는 'Pills and soap'라는 곡도 있습니다. 여기서 정치 성향도 살짝 엿볼 수 있죠? 물론 대처리즘 반대한다고 정치 성향이라 판단하는 것도 무리가 있긴 합니다. 당시 제 정신 박힌 로커였다면 누구나 거기에 반대했으니까요. 하지만 대표적인 좌파 밴드인 스페셜스와도 공연했고, 'Pills and soap'는 선거철에 나온 음악일 뿐더러, 데뷔 싱글인 'Less than zero'는 파시스트 오스왈드 모슬리에 대한 비판이고, 채식주의자에 베이비 붐 세대라는 걸 오버랩시켜 본다면? 이것도 좀 편견일까요? ^^

1977년 SNL 사건은 정말 유명하죠. 방송계의 전설이랄까. 고작 신인 밴드 주제에 방송 나가고 있는 도중에 "그만해!"라고 밴드 연주를 멈추게 하고 다른 노래를 불렀죠. 결국 10년 가까이 방송정지를 먹었는데, PD 입장에선 엄청 화났을 거에요 ^^

베스트 앨범들 대부분이 어트랙션스 시절과 초반 10년에 초점을 맞출 정도로 90년대 이후로는 거의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영화 <노팅 힐>에 삽입된 'She'가 놀라운 반향을 일으켜서 오히려 90년대 가수로 생각될 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영화의 여운이 그대로 전해지는 곡이었기 때문일 거에요. 본인 작곡이 아니라 샹송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공연장에서는 'Alison'을 더 많이 부릅니다. 그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발라드죠.

2003년에 다이애나 크롤과 결혼했는데 오늘 공연하면서 이걸 가지고 재밌는 농담을 했습니다. "서울에선 당신은 모르지만 당신 부인을 알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선 다이애나 크롤의 'All or nothing at all'을 불렀는데 이것도 잘들 몰랐죠 ^^;; 그렇다고 우리가 세계적인 거장을 앞에 두고 'She' 한곡만을 바라고 있던 무지한 팝의 변방인가? 그렇지도 않아요. 엘비스 코스텔로는 영국과 미국에서도 '대중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단 한 번도 '국민 가수' 반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 흔한 빌보드 1위곡 하나 없는데요 뭘. 영국에서도 1위 곡이 없습니다 ^^;; 다만 70년대 후반 펑크 씬을 대표하는 기수였고, 영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며, 수십년 동안 깊고 다양한 음악들을 들려주어 결국엔 거장 칭호를 받아낸 사람이죠. 거장 칭호에 눌려서 괜히 기죽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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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길어져도 불편하니 아쉽지만 공연 얘기로 돌아가죠 ^^

시작 전에 무대 세팅을 얼핏 보니 어쿠스틱 기타가 5, 6대 정도 놓여 있었습니다. 한쪽 구석에 의자도 있고 마이크도 1대 더 있길래 드럼 베이스만 없다 뿐이지 '밴드'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기타를 바꿔 연주하기 편하게 미리 놔둔 것이었습니다. 2시간 내내 엘비스 코스텔로 홀로 무대에 섰습니다. 사실 이게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원곡 그대로를 못 듣는 건 둘째 치고 사운드가 휑했거든요. 언젠가 그의 풀 밴드 셋 공연을 꼭 보고 싶습니다.

대망의 첫 곡은 '(The angels wanna wear my) red shoes'였습니다. 1977년 데뷔 앨범 <My Aim Is True>의 수록곡이었죠. 회색 양복을 댄디하게 차려입고 중절모를 썼는데 색깔과 악세사리에 상관없이 일단 1)정장 차림에 2) 뿔테 안경 쓰고 3) 기타를 드니까 무조건 1집 재킷과 버디 홀리가 떠올랐습니다 ^^ 갑자기 비교가 해보고 싶어서 집에 와서 1977년 TOTP 라이브를 찾아 봤는데 좀 더 마르고 좀 더 시니컬해 보이더군요. 오늘은 유쾌한 아저씨의 인상이었습니다.

두 번째 곡 'Either side of the same town'부터 이번 공연 분위기가 감이 잡히더군요. 어쿠스틱 기타 1대로만 연주하지만 그렇다고 로맨틱한 포크 발라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밴드 셋으로 만들어진 원곡 에너지를 그대로 뿜어내려고 했어요. 소리가 비어 있긴 했어도 보컬과 기타 연주엔 박력이 넘쳤습니다. 일렉트릭 기타는 딱 2번 잡았는데 'Watching the detectives', 'Pump it up'에서였습니다.

세 번째로 부른 곡은 유일하게 빌보드 Top 20 안에 들었던 'Veronica'였습니다. 원래 '시그니처 송'을 부르면 도입부 몇 마디에 바로 관객석 함성이 터지는 게 정상인데 오늘은 내내 조용하더군요 ^^;; 폴 매카트니와 공동 작곡했던 노래로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죠. 부르기 직전과 직후에 폴 매카트니와 할머니 얘기를 했던 건 그래서입니다.

우리 관객들이 관람 매너와 호응도가 좋다는 건 이미 널리 공인된 사실이죠. 모르는 노래들만 주구장창 나오는 데도 일단 노래가 끝나면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졌습니다. 'A slow drag with Josephine'을 부를 때는 소극장 규모로 착각하셨는지 마이크 없이 무대 앞으로 나가 육성과 휘파람으로 공연했는데 2층과 3층에선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나자마자 도리어 "재밌는 거 봤다"는 식의 폭발적인 박수가 터졌죠.

물론 국내 히트곡이 워낙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출된 웃지 못할 해프닝들도 있었습니다. 'Radio sweetheart'를 부르다 관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겼는데 아무도 따라하질 않아서 가수가 직접 관객을 연습시켜서 따라 불렀죠 ^^;; 비틀즈의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를 커버할 때도 "Hey!" 추임새를 같이 넣어 달라는 손짓을 여러 번 했는데 외국인들 몇을 제외하고는 조용했습니다. 그래도 관객들은 매 곡마다 큰 박수를 보내주며 열띠게 환영했고, 결국 '투 앵콜'이라는, 히트곡 없는 가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호의를 유도해냈습니다. 두 번째 다시 나올 땐 정말 감동적이더군요.

'Everyday I write the book', 'Veronica', 'Alison'을 제외하면 주요 곡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골든 레퍼토리들은 앵콜 무대에 나올 거라고 짐작했어요. 워낙 앵콜을 길게 하기로 유명한 분이기도 하고요. 예상은 그대로 맞더군요. 'She'를 시작으로 'Peace, love and understandng', 'Pump it up', 'Oliver's army'를 연속으로 쏟아냈습니다. 이 때가 공연의 하이라이트였어요.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장내 분위기가 방방 떴습니다. 저도 너무 좋아하던 곡들이라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어요. 밴드 사운드가 절실히 아쉬웠지만 직접 듣는다는 감흥이 더 커서 괜찮았습니다. 'Pump it up'을 끝으로 멀리 있는 관객들을 끌어안듯 두 팔을 쫙 벌리고 큰 인사를 여러차례 했는데, 벗은 중절모 아래로 벗겨진 머리가 살짝 보이더군요. 팬들에게 실망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모자를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원고료도 없이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이유는 1)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이고 2)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 음악 팬들과 그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기 때문이고 3) 내한공연을 계기로 그의 음악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싶어서에요. 이 필요성에 공감하신다면 트윗에서 RT 부탁드려요. 저로선 잊지 못할 밤이었습니다. 모두들 굿나잇 ^^


셋째 날, 경남 통영 (4)


이번 여행은 무조건 많이 걷기로 했습니다.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을 켜고
시내 주요 명물들의 길안내를 실행해
몇 시간 정도 하염 없이 걸어다녔습니다.
 
걷는 여행은 그곳을 구석구석 알 수 있어 좋습니다.
옛날이라면 길을 몰라 이런 게 불가능했지만
요즘은 여행 초보라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구석구석 갈 수 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통영 곳곳에 이런 목욕탕 굴뚝이 많습니다.
색깔과 크기까지 전부 똑같습니다.


거리에 이런 벽화도 있더군요.
모조품ㅎㅎ


충무교입니다.
통영은 크게 통영 중심 시내와 미륵도로 나뉘는데
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
충무교와 통영대교입니다.

충무교는 직접 걸어봤습니다.
1미터 남짓한 좁은 인도가 있는데
초고속 겨울 바람이 차도 쪽으로 몸을 밀어부칩니다.
난간 쪽을 보니 까마득한 낭떠러지입니다.
50m 정도를 걸어가는데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짜릿하기 그지없는!!!


멀리서 바라 본 통영대교입니다.
밤에는 조명들이 켜지는데, 너무 추워서 기다리질 못했습니다. 

 
해저터널입니다.
충무교가 생기기 이전엔
미륵도로 가는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는데,
바다를 막아서 그 안에다가 터널을 만들었다네요.
충무교가 생긴 이후엔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원래 차가 다니던 길이라 그런지
안에는 '볼 것'은 전혀 없습니다.

출구 앞에서 한 여자 분이
혼자 여행을 왔는지 사진을 찍어달라 하는데
슬쩍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관뒀습니다.
잘 한 걸까요? ㅋㅋㅋ 

 
하릴 없이 시내를 걸었습니다.
이젠 완전히 깜깜해져서 낮의 근사한 경치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대신에 항구라는 걸 알게 하는 밤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거북선이 있고요
(들어가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소매물도와 한산도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아직도 성탄 장식이 화려하네요. 

 
'대화'라는 이름은 어딜 가나 인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쌩뚱맞게도 '카페 베네'가 있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더욱 쌩뚱맞게도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흡연석 너머로 통영항의 야경이 펼쳐집니다.
옆 테이블에선 혼자 온 여자를 한 남자가 말로 꼬시는 데에 성공합니다.


여관에 세면대가 없어서 이곳에서 세수를 했습니다.
틈틈히 손빨래를 계속 했기 때문에
아직 꼬제제하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횟집으로 향합니다.
통영의 명물인 굴,
돈이 없으니 회는 물회로,
부산의 명물 시원 소주를 시켰습니다.

얼마나 맛있었냐고요?
허허허... 

 
내일은 해남 땅끝마을로 갑니다.
20대의 마지막을 '끝장'내러 갑니다.



셋째 날, 경남 통영 (3)


동피랑마을을 돌아보고 배가 고파 점심을 먹었습니다.
중앙시장 옆에 충무김밥 골목이 있습니다.
전부 다 '원조', 'TV 출연' 등을 광고로 내걸고 있는데,
대부분 비슷하겠다 싶어 '원조 3대 할매 김밥'으로 갔습니다.

충무김밥은 뱃사람들이 도시락처럼 싸서 다닌 음식이라는군요.
바다향 가득한 햇김으로 싼 쌀밥
남도 식으로 걸쭉하고 짜게 무친 오징어
젓갈이 많이 들어간 아삭한 깍두기
일본식과 섞인 듯한 부드러운 된장국도 주더군요. 

 
통영엔 꿀방집들이 많습니다.
꿀빵은 어떤 것이 유명한 지 몰라 '꿀단지'라는 곳에서 샀습니다.
통영 시내 여러 곳에 있던데,
이곳 명물인 꿀빵을 브랜드화시킨 기업 같더라고요.

5천원에 6개를 주는데, 애기 주먹만합니다.
꿀을 발라 딱딱하게 굳은 도너츠 맛입니다.
안에는 달달한 팥이 들어가 있습니다.
물엿을 바른 것처럼 입안 구석구석에 딱딱하게 끼입니다.
제가 격하게 좋아하는 흰우유와 같이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여관 바로 옆에 있는 조각공원에 올랐습니다.
중앙시장 부근에선 가장 높아서, 시내가 한 눈에 보입니다.


길을 따라 100미터 정도를 올라가면 커다란 공연장이 있습니다.
통영 시내 주민들이 공연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곳이에요.


조각공원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습니다.
대강 이런 것들이 즐비합니다.


가장 특별한 건, 이곳 쉼터에서 항구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때마침 석양이 지고 있었습니다.
이때다 싶어 아이팟을 꺼냈습니다.

지는 해를 보면서, 항구를 바라 보면서, 하염 없이 음악을 들었습니다.
토이의 '뜨거운 안녕',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이적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이 세곡이 정말 잘 어울리더라고요. 
음악 분위기와 가사 모두가 진하게 감성을 자극합니다. 
지난 날들은 다 놓고 한 해가 왔으면 좋겠는데....
 
첫 번째 사진은 쉼터,
두 번째 사진은 아까 동피랑 마을에서 찍은 시내 풍경
세 번째 사진은 음악을 들으며 바라 본 풍경입니다.




셋째 날, 경남 통영 (2)


중앙시장 바로 옆에 동피랑마을이란 곳이 있습니다.
평범한 달동네인데, 집들 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동피랑마을은 원래 철거대상 마을이었는데,
주민들이 철거를 막기 위해서
'희망'의 의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의 벽화마을로 유명해졌습니다.
결국, 동피랑마을은 철거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찍은 벽화들 여기에 주욱 늘어놓습니다. 
정겨워요. 재미도 있고. 



 

셋째 날, 경남 통영 (1)


서울엔 폭설이 왔다죠? 전국적으로도 눈 때문에 난리라고.
통영은 예외입니다.
흐리긴 했지만 잠깐씩 비가 조금 오는 정도였습니다.
해가 드는 시간도 상당했어요.
온도도 하루종일 영상권이었습니다.
괜히 남쪽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날씨가 흐렸던 관계로 '경치' 구경은 일찍 접었습니다.
남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미륵산 정상을
(여기서 한려수도가 한 눈에 보이거든요)
직접 걸어서 올라가려고 했지만
비가 와서 미끄럽고 잔뜩 흐린 날씨에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다음 기회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통영에 도착한 것은 아침 10시 경입니다.
남해에서 통영으로 가려면 다음의 코스를 거쳐야 합니다.
남해시외버스터미널->진주시외버스터미널-> 통영시외버스터미널
저는 운좋게 내리자마자 바로 차들이 있었습니다.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서 행운이었습니다.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면 커다란 관광지도가 있습니다.
어느 관광도시에나 이런 것이 있더군요. 
막상 다녀보니까 이런 것들을 해설을 곁들인 핸드북으로 만들어 팔면
정말 대박이겠다 싶었어요.
여행 책자들이 괜히 인기인 게 아니더라고요. 


통영에서도 버스를 탔습니다.
지금까지 택시는 딱 1번 탔네요.
통영도 버스 안 풍경은 서울과 똑같습니다. 


부산에서도 이걸 봤는데,
곧 도착할 버스들과 도착 예정 시간이 실시간으로 뜹니다.
서울에도 이런 게 있지만 이게 훨씬 보기 편하고 깔끔합니다. 
경상남도 쪽이 이런 건 더 잘 되어 있네요


오늘은 잼난 것 하나에 도전해봤습니다.
그동안 연인들을 위한 듯한 좋은 시설의 모텔에서 묶었는데
외로운 1인 여행은 좀 더 궁상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주변에서 제일 허름하고 후진 숙박업소에 투숙해봤습니다. 
제가 발견한 곳은 이곳입니다. 
여인숙들도 있었지만 겉보기의 허름함은 이곳이 더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시큼한 냄새가 풍깁니다. 
저녁을 먹으러 갔던 횟집 화장실 냄새보다 심합니다.
잘 정돈한 화장실보다 훨씬 독한 실내 악취 

방바닥이 차다고 카운터에 전화를 넣자,
할머님이 침대에 깔린 전기장판으로 만족하라고 윽박지릅니다.
가격은 2만5천원.

은근 낭만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유배 당한 느낌입니다. 
내부로 들어서면 복도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키도 없습니다. 노트북 갖고 나옴) 

절경을 맛보기로 한 계획은 취소했으므로 
시내의 유명한 곳들을 둘러보려고 발품을 팔았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중앙시장입니다.
정식 명칭은 중앙활어시장입니다. 


바닷가와 항구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중심지 역시 어시장입니다. 
들어가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진돗개 만한 생선들을 떼로 쌓아놓고 팝니다. 
생선 이름을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군대에서 후임들이 나무 이름을 모른다고
'서울놈' 취급을 하는 게 싫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소외감을 ㅜ
 
어시장이지만 없는 게 없습니다. 
옷감을 파는 곳과 인삼을 파는 곳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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